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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빈접대술5

‘불우이웃’이라는 말의 정서는 과연 바람직할까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불우이웃’이라는 말, 과연 그 표현이 전달하고 있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요? 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오히려 도움을 가장한 억압은 아니었을까요? 불우이웃이란 단어의 구조와 뉘앙스를 살펴보자‘불우(不遇)’는 단순히 운이 나쁘다는 뜻을 넘어서,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주류에서 밀려난 존재를 지칭하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합니다. 여기에 ‘이웃’이라는 단어가 결합되면, 상대방은 ‘가엾고 불쌍한 존재’가 되고, 이 표현을 사용하는 이는 자연스레 우월한 위치에서 ‘돕는 자’가 되어버립니다. 겉보기엔 따뜻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서열과 낙인이 숨어 있습니다. 돕는다는 착각 속 위계적 시선과 함정을 알아보자‘불우이웃 돕기’는 선한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론 그 속에 ‘나는.. 2025. 6. 16.
폭력성과 불쾌감을 감지조차 할 수 없는 심령 상태로 돌아가자 한번 생각해 보세요. 폭력성과 불쾌감이 아예 감지되지 않는 심령 상태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폭력성과 불쾌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대부분의 불쾌감은 지금 이 순간의 자극이 아닙니다. 사실 그 자극을 해석하고 왜곡하는 것은 우리 안에 축적된 기억장치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단순히 말을 놓았을 때, 그 자체는 중립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무시당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감정이 격해지고, 그것이 곧 폭력성의 출발점이 됩니다. 기억은 비교를 낳고, 비교는 판단을 낳으며, 판단은 정죄를 불러옵니다.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내면의 폭력성을 합리화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평화는 타인을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장치의 작동.. 2025. 6. 14.
실천 없는 설교, 해결하는 화법, 다툼을 막는 대화의 구조 오늘날 설교와 이론은 넘쳐납니다. 하지만 정말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말은 얼마나 될까요? 진짜 필요한 것은 감동이 아니라 실천, 감정이 아니라 중심을 건드리는 말입니다. 사람은 언행만 보고 판단하지만 본질은 중심에 있다사람들은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판단합니다. “저 사람은 거칠게 말하네.” “저 설교는 훌륭했어.” “저 상담가는 논리가 똑똑해 보여.”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언행이 어디서부터 나왔느냐입니다. 어떤 생각의 구조에서 말이 나왔는가? 어떤 감정 상태에서 그런 행동이 나왔는가? 무엇보다, 그 중심은 사랑인가, 교만인가, 통제인가? 저는 모든 언행을 판단할 때 항상 그 뿌리와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먼저 봅니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사랑을 말하는 설교자도 그 중심에 ‘두려움’이나 ‘.. 2025. 6. 10.
거듭났다면, 작동불가가 정상입니다 기능상실이 완성이라 이 모든 자극에 반응하던 옛 자아는 거듭남과 함께 작동불가 상태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능상실이 곧 완성이라는 진리입니다. 거듭남이란 더 이상 반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거듭났다는 말은 단지 종교적 소속이나 도덕적 향상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여기서 핵심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즉, 예전의 사고방식, 반응패턴, 감정기제, 관계습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야 정상이라는 뜻입니다. 무시당하면 자동으로 화가 나고, 인정을 받으면 기쁘고 더 잘하려 하고, 모욕을 당하면 자존심이 상하는… 이런 세상의 반응 시스템에 더 이상 끌리지 않는 것, 그 자체가 바로 거.. 2025.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