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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그 선행이 오히려 혐오감을 준다면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진짜 의도는 과연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보여주기식이 아닌 흐름이 되어야 한다
선행이 외식(위선)으로 전락하는 첫 번째 이유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겉은 하얗게 칠했지만 안에는 시체가 있는 것처럼, 겉으로는 의로운 척하지만 마음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 선행은 ‘보여주기’가 아닌, 흐르듯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입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내가 먼저 감동받아 흘러나와야 진짜입니다.
그 흐름 안에 쾌감과 즐거움이 있어야 억지나 인색함이 사라집니다.
쾌감과 사랑과 행복감이 항상 동반되어야 한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착각은 “선은 고통을 감수하고 해야 한다”는 인식입니다.
하지만 진짜 선은 내면에서 기쁨이 솟아오를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서 동시에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억지나 인색입니다.
사랑이나 선행을 할 때는 의무나 책임 때문에 하고 쾌감은 다른 방식으로 즐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아내와 가족에게는 의무나 책임 때문에 하고 쾌감은 다른 여자와 즐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행복감을 못 느끼는 억지 선행은 결국 자랑, 피곤함, 열등감, 분노로 귀결되고 맙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라고 했듯,
쾌감과 사랑이 동반될 때, 그것은 신성과 연결된 선행이 됩니다.
기준 없는 사랑, 미지정으로 해야 한다
‘저 사람은 도와주고, 저 사람은 안 도와줘야지’라는 태도는 이미 조건적 선행입니다.
선행이 진짜가 되려면, 사람을 구분하지 않아야 합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심지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든 그 안에서 사랑을 느끼고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입니다.
지정도 없고 기준도 없는 사랑,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아가페"이며 이런 사랑 안에는 갈등, 계산, 자랑, 비교가 없습니다.
지속해서 흘러야 하며 쌓이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서 기록된 바 하늘의 만나가 하루 지나면 썩었던 것처럼, 선행도 ‘쌓이면’ 부패합니다.
내가 했던 선행을 기억하고 모으는 순간, 그것은 ‘업적’이 되고 ‘자랑’이 됩니다.
그리고 자랑은 필연적으로 타인을 깎아내리는 비교가 되기 쉽습니다.
진짜 사랑과 선행은 흘러가야 하며, 받은 사랑과 기쁨을 다시 나누는 순환 구조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업적을 많이 모은 자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흐르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맺음말
진짜 사랑과 선행은 내가 먼저 감동받아 흐르게 되는 기쁨의 확장입니다.
기준 없이, 계산 없이, 내가 좋아서 그러고 싶어서 할 때가 가장 효과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선이란 '어떤 행위'가 아니라 '기쁨 속에서 흘러나온 사랑'입니다.